오늘은 동사 '빌다'와 '빌리다'를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자료에는 '이 자리를 빌려서', 두 번째 자료에는 '이 자리를 빌어서'로 적혀 있습니다. 연말 시상식에서 자주 듣게 되는 표현이죠. '빌려서'와 '빌어서' 중 어떤 말이 바를까요?
우선, '빌려서'는 '남의 물건이나 돈 따위를 나중에 도로 돌려주거나 대가를 갚기로 하고 얼마 동안 쓰다 / 남의 도움을 받거나 사람이나 물건 따위를 믿고 기대다 / 일정한 형식이나 이론, 또는 남의 말이나 글 따위를 취하여 따르다 / 어떤 일을 하기 위해 기회를 이용하다'의 뜻을 가진 동사 '빌리다'가 원형입니다.
그래서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갚았다.", "남의 손을 빌려 일을 처리할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수필이라는 형식을 빌려 자기의 속 이야기를 풀어 갔다."와 같이 씁니다.
반면에, '빌어서'는 동사 '빌다'가 원형입니다. '빌다'에는 '바라는 바를 이루게 하여 달라고 신이나 사람, 사물 따위에 간청하다 / 잘못을 용서하여 달라고 호소하다 /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다'를 뜻하기도 하고, '남의 물건을 공짜로 달라고 호소하여 얻다'의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소녀는 하늘에 소원을 빌었다.", "아이는 엄마에게 다시는 그런 짓을 안 하겠다고 빌었다.", "그들의 앞날에 더 큰 영광이 있기를 빌어 마지않는다.", "그들은 집집마다 다니며 밥을 빌었다."처럼 씁니다.
따라서 이 자리를 이용해 본인의 소감이나 의견을 말하겠다는 뜻은 첫 번째 자료와 같이 '이 자리를 빌려서'로 표현하는 것이 바릅니다.
이렇듯, 동사 '빌다'와 '빌리다'는 뜻이 전혀 다른 말이므로, 활용형인 '빌어'와 '빌려'도 구분해서 써야 합니다.
참고로, 1988년에 표준어 규정이 개정되기 전에는 동사 '빌다'가 오늘날의 '빌리다'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어 ~."라는 표현이 오랫동안 굳어져 쓰였던 거죠. 하지만 지금은 바뀐 규정에 따라, '어떤 일을 하기 위해 기회를 이용하다'의 뜻을 나타내는 동사 '빌리다'를 써서 "이 자리를 빌려 ~."라고 해야 올바른 표현입니다.
단어 정리
빌다 [빌ː다]
→ 활용: 빌어, 비니, 비오
「동사」
[1]【…에/에게 …을】【 …에/에게 -기를】【 …에/에게 -고】
1.【…에/에게 -도록】바라는 바를 이루게 하여 달라고 신이나 사람, 사물 따위에 간청하다.
⇒ 대보름날 달님에게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2. 잘못을 용서하여 달라고 호소하다.
⇒ 범인은 피해자의 가족에게 용서를 빌었다.
[2]【…을】【 -기를】생각한 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다.
⇒ 빨리 완쾌하시기를 빌어요.
빌다 [빌ː다]
→ 활용: 빌어, 비니, 비오
「동사」
【…을】남의 물건을 공짜로 달라고 호소하여 얻다.
⇒ 이웃에게 양식을 빌다.
빌리다 [빌리다]
→ 활용: 빌리어(빌려), 빌리니
「동사」
[1]【…에서/에게서 …을】 (('…에게서' 대신에 '…에게'가 쓰이기도 한다))
남의 물건이나 돈 따위를 나중에 도로 돌려주거나 대가를 갚기로 하고 얼마 동안 쓰다.
⇒ 친구한테서 책을 빌리다.
[2]【…을】
1. 남의 도움을 받거나 사람이나 물건 따위를 믿고 기대다.
⇒ 일손을 빌려서야 일을 마칠 수 있었다.
2. 일정한 형식이나 이론, 또는 남의 말이나 글 따위를 취하여 따르다.
⇒ 성인의 말씀을 빌려 설교하다.
3. 어떤 일을 하기 위해 기회를 이용하다.
⇒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마무리 퀴즈
※ 다음 중 어휘가 바른 것을 고르세요.
1. 우리가 알고 있는 쟁쟁한 벤처기업 대부분이 창고나 남의 집 차고를 ( 빌려서 / 빌어서 ) 출발한 기업들이다.
2. 저는 이 자리를 ( 빌려 / 빌어 )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3. ( 빌려는 / 빌어는 ) 먹어도 다리아랫소리 하기는 싫다.
4. 신문에서는 이 사건을 고위 관리들의 말을 ( 빌려 / 빌어 ) 보도했다.
정답 및 풀이
[정답]
1. 빌려서 2. 빌려 3. 빌어는 4. 빌려
[풀이]
1. '남의 물건이나 돈 따위를 나중에 도로 돌려주거나 대가를 갚기로 하고 얼마 동안 쓰다'의 뜻을 나타내는 동사는 '빌리다'이므로, '빌려서'가 바릅니다.
2. '어떤 일을 하기 위해 기회를 이용하다'를 뜻하는 동사는 '빌리다'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를 이용해 본인의 소감이나 의견을 말하겠다는 뜻은 '이 자리를 빌려'로 표현하는 것이 바릅니다.
3. '남의 물건을 공짜로 달라고 호소하여 얻다'의 뜻을 나타내는 동사는 '빌다'이므로, '빌어는'으로 써야 바릅니다. 속담 "빌어는 먹어도 다리아랫소리 하기는 싫다."는 아무리 궁핍하여도 비굴하게 남에게 아첨하거나 빌붙기는 싫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참고로, '다리아랫소리'는 머리를 다리 아래까지 숙여 내는 소리라는 뜻으로, 남에게 굽실거리거나 애걸하며 하는 말을 이릅니다.
4. '일정한 형식이나 이론, 또는 남의 말이나 글 따위를 취하여 따르다'를 뜻하는 동사는 '빌리다'이므로, '빌려'가 바릅니다.
※ 포스팅 작성 시 맞춤법과 띄어쓰기 등 한국어 어문 규정은 문화체육관광부가 고시한 「한글 맞춤법」(제2017-12호) ·「표준어 규정」(제2017-13호) ·「외래어 표기법」(제2017-14호)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제2014-42호)을, 단어의 뜻풀이 등은 국립국어원에서 제공하는 《표준국어대사전》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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