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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 다듬기/헷갈리는 말, 가려서 쓰기

심심하다

 

 

형태가 같은 우리말 표현을 쓰다 보면, 그 뜻을 잘못 이해하여 오해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심심하다'입니다.

우선, '심심하다'가 고유어 표현으로 쓰일 때는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와 '음식 맛이 조금 싱겁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전자는 "심심해서 한번 들렀지, ."나 "할머니는 심심하면 입버릇처럼 옛날얘기를 꺼내신다."처럼 쓰고, 후자는 "뿌옇고 떫고 심심한 그 막걸리에는 한국인의 소박한 애환이, 김삿갓의 그 웃음 같은 것이 그대로 깃들어 있다.≪이어령,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처럼 쓰죠.

'심심하다'가 한자어 표현으로 쓰일 때도 살펴볼까요.

'심할 심(甚)' 자와 '깊을 심(深)' 자로 이뤄진 '심심(甚深)하다'는 주로 '심심한' 꼴로 쓰여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를 뜻합니다. "그동안의 노고에 심심한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빛내 주신 내빈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를 표합니다."처럼 말이죠.

'심심한'은 '깊은'으로 순화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심심한 사의(謝意)'는 '깊은 고마움'으로 표현할 수 있겠죠.

그리고 '깊을 심(深)' 자와 '깊을 심(深)' 자로 이뤄진 '심심(深深)하다'는 '깊고 깊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참고로, 고유어 표현 '심심하다'와는 달리 한자어 표현인 '심심하다'는 첫음절 '심'을 길게 발음합니다.

최근에 '심심한 사과' 논란이 있었죠. 이에 관하여 공감 가는 글이 있기에 소개하며 오늘 글은 마무리하겠습니다. 

만약 말에도 머리카락 같은 숱이 있다면 말을 편식하지 않을 때 더 풍성해지고 윤기도 나지 않을까? 오히려 궁금하게 하고 연구해 볼 우리말이 다채롭게 있다는 사실에 심심하게 감사를 표한다.

<심심하고 삼삼하게>_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

 

말은 조심해 가려 써야 하나, 지나치면 억압을 초래한다. 대화의 맥락에 따른 예의를 크게 잃지 않는 한, 한자어든 신조어든 마음껏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 아무 때나 낯선 단어를 남발하면서 '못 알아듣는 네가 잘못'이라는 식의 엘리트적 권위주의와 마찬가지로, '내가 모르는 말 쓰지 마' 또는 '내가 모르는 이야기 하는 네가 틀림' 같은 태도도 폭력적이다. 성장 과정에 따라 사람마다 축적한 어휘가 다르므로, 나와 다른 말을 쓰는 이들을 인정치 않으면 대화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중략)

문제는 문해력이 아니라 낯선 말을 접했을 때의 태도이다. 카페 주인이 고객을 대상으로 사죄하면서 '지루한 사과' 같은 말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분을 못 이기고 즉각 '지적질'에 나서는 경솔함 대신, 한 걸음 물러서서 '심심한'에 혹여 내가 모르는 의미가 있을 수 있음을 숙고하는 신중함을 보였으면 좋았을 테다.

<'심심한 사과' 논란… 문해력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_ 장은수 출판평론가

 

 

 

 

단어 정리
심심-하다 [심심하다]

→ 활용: 심심하여(심심해), 심심하니

「형용사」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 심심하던 차에 말 상대를 만나 반가웠다.


심심-하다 [심심하다]

→ 활용: 심심하여(심심해), 심심하니

「형용사」

음식 맛이 조금 싱겁다.
⇒ 국물을 심심하게 끓이다.


심심-하다(甚深하다) [심ː심하다]

「형용사」

((주로 '심심한' 꼴로 쓰여))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
⇒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심심-하다(深深하다) [심ː심하다]

→ 활용: 심심하여(심심해), 심심하니

「형용사」

깊고 깊다.

 


 

마무리 퀴즈
※ 다음 중 바른 것을 고르세요.

1. 우리나라 정부와 국민을 대표해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에 ( 심심한 / 깊은 )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정답 및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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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1. 심심한, 깊은

 

[풀이]

1. '심심(甚深)하다'가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의 뜻을 나타내므로 '심심한'을 써도 되고, '심심한'의 순화어인 '깊은'을 써도 됩니다.

 

 

※ 포스팅 작성 시 맞춤법과 띄어쓰기 등 한국어 어문 규정은 문화체육관광부가 고시한 「한글 맞춤법」(제2017-12호)  ·「표준어 규정」(제2017-13호)  ·「외래어 표기법」(제2017-14호)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제2014-42호)을, 단어의 뜻풀이 등은 국립국어원에서 제공하는《표준국어대사전》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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